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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관룡사, 영산만년교, 연지못, 창녕 영산 교리 신씨고가

취미생활~♣/외출 하기

by 달래~♡ 2021. 2. 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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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 : 2021. 02. 20. (토)

여행지 : 창녕

방문지 : 창녕 인양사 조성비 → 창녕술정리동 삼층석탑 & 창녕술정리 하씨초가 & 창녕상설시장

           → 만옥정공원 → 산과 구름 아래 → 창녕송현동석불좌상 → 관룡사 (돌장승, 용선대) → 영산만년교

           → 연지못(둘리식당) → 창녕영산교리신씨고가

 

 

 

< 관룡사 >

 

* 한가지 소원은 꼭 이뤄진다는 '관룡사' *
신라시대 8대 사찰중 하나로 349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전설에 의하면 관룡사를 창건할 때 화왕산 꼭대기 연못에 사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여러사람이 보았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 잊지 말고 꼭 보고 가야할 관룡사 돌장승 *
  2003년 태풍 '매미'때 감쪽 같이 사라졌는데, 한 달 뒤 충남 홍성에서 발견되어 다시 제자리에 서 있게 됨.

 일주문(돌계단 위로 돌을 쌓아 만든 산문)을 지나면 대나무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는데, 일주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았기에 보지는 못했고, 하산하는길에 일주문을 스치듯 지나가며 봤다.

  사천왕상도 나무가 아닌 그림이다.

  관룡사 대웅전은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주불을 모시는 건물이지만, 관룡사는 석가모니불 양옆에 약사여래,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또한 대웅전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창녕 관룡사 대웅전 관음보살벽화'는 조선 후기 관음보살도 벽화로 보물 제1816호이다. 놓치지 말고 꼭 뒤로 가서 절 올리시길...^^

대웅전은 조선 태종 1년(1401)에 처음 세워졌으며 이후 여러번 중수 하였다고 한다.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은 관룡사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보아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로 짐작되므로 원래는 왼손위에 약그릇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불상에는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이 드러난다. 몸은 크지 않지만 얼굴은 둔탁하고 귀가 어깨까지 내려와 붙어 있다. 목은 짧으며 무릎은 높고, 폭이 좁아 웅크린 듯 자세가 부자연스럽다.
  대좌(臺座 - 부처나 보살 등을 올려놓는 받침)의 가운데 부분인 중대석에 '대력 7년 임자 4월에 미륵불을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대좌는 통일신라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측한다. 그런데 현재 대좌 위에는 미륵불이 아니라 약사불이 모셔져 있어 대좌와 불상이 각기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처음 만들었던 미륵불이 파괴되자 이후 고려시애데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본 따 불상만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 *

  석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로 유골이 없어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보신곳으로 여겨진다.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 석탑은 이단으로 된 바닥돌,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층 바닥돌은 2매, 위층 바닥돌은 면석(面石 - 바닥돌부의 네 면을 이루는 벽체부분)과 덮개돌을 각 1매씩 사용하는 등 간략화되어 있다. 지붕돌과 몸돌을 한 돌로 처리하거나 지붕돌 받침 수를 5단에서 3단으로 줄이는 등 고려 전기 석탑의 양식을 보인다.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 석탑은 정면에 위치한 소형 약사전의 규모에 맞는 소형 석탑의 단아한 양식을 지닌 탑으로 평가된다. 탑의 아래층 바닥돌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코끼리의 두 눈을 형상화한 안상(眼象 - 불꽃과 연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무늬)을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3단의 자연석을 쌓아 올려 약사전 기단과 높이를 맞추었으나 원래 자연 암반 위에 세운 탑으로 자연 암반을 그대로 석탑의 바닥에 이용한 것은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관룡사 약사전 *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건물이다. 창녕 관룡사 약사전은 관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지붕과 처마를 받치고 있는 기둥 위에 아주 간결한 장식만 있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순천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이 기둥 장식을 이와 비슷하게 했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어 건물이 안정감을 준다.
  이 약사전은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물로, 규모가 작은데도 짜임새가 훌륭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관룡사 원음각 *
경남 문화재 자료140호
  방문 당시 모든 문이 닫혀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그런건가??
  암튼, 관룡사 원음각은 사방을 볼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지은 누각으로 불교 용품을 보관하거나 설법을하는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2층 건물로 1층은 양옆으로 방을 두고 중앙을 통해 대웅전으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

사찰 뒤로 보이는 관룡산 병풍바위

관룡산의 힘차고 멋진 능선과 함께 아름다운 병풍바위는 정말 일품~!!

미세먼지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시야를 가리는 이눔의 미세먼지.. ㅠ.ㅠ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 여래좌상 *

  용선대는 관룡사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용선대에 자리한 불상이다. 연꽃을 형상화한 대좌(臺座 - 부처나 보살 등을 올려놓는 받침)위에 모셔져 있으며, 원래는 불상 뒤에 광배(光背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의장)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머리카락은 작은 소라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며, 정수리 부근에는 육계( 肉髻 - 원래 인도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올려 묶던 상투에서 유래됐으며, 부처의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함) 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네모반듯한 얼굴과 넓은 어깨, 묵직한 체구와 연꽃 모양의 대좌를 3단으로 올린 모습 등을 보면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으나 통일신라 석불좌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 다리 사이의 부채꼴 주름이 없어 독특하다.

  1973년 대좌를 수리하면서 불상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는데, 경주 석굴암 석굴의 본존불이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처럼 불상이 동짓날에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도록 했다.



  관룡사 뒤쪽 길로 500m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용선대.
  제법 가파른 산이라 500m 산행중에서도 조금 거친 산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운동화를 신고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산행이기도 하다.

  용선대 좌대 중대석에 새겨진 명문으로 8C초 석굴암 이전 통일신라 시대 조성된 석조여래좌상임을 알 수 있다.
  석굴암 본존불과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처럼 동짓날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도록 했다.

  불교TV에서 봤는데, 석조석가여래좌상은 부처님과 좌대 모두 같은 돌인데,

일부러 부처님은 좀 더 깨끗하게 흰 돌로, 앉아계신 좌대는 철성분이 많은 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종류의 돌같아 보이지만 같은 돌이라는..^^

 

 

 

병풍바위를 병풍삼아.. 한 컷.. 이때는 좋았지. 잠시후 불어온 엄청난 바람에.. 오후~ 떨어지는 줄... ㅋㅋ

 

용선대에서 옥천지 방향으로 내려다본 모습. 미세먼지야.. ㅠ.ㅠ

 

용선대 올라가는길은 울창한 송림이 반겨준다.
옥천계곡의 맑은 물은 못 봤지만...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 영산만년교 >

너무 이쁜 조선 정조4년으로 추정되는 무지개 모양의 석교

* 창녕 영산 만년교 *

  하천 양쪽의 큰 바위 위에 화강석을 반달 모양으로 무지개처럼 쌓고 그 위에 돌을 올린다음 흙을 깔아 길을 만들었다.

  '만년교'는 만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다리라는 뜻인데, 다리 사이로 흐르는 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라고도 하며, 다리를 놓은 고을 원님의 공덕을 기르는 뜻에서 '원다리'라고도 부른다.
  정조 4년(1780)에 석공 백진기가 처음 다리를 만들었고, 고종 29년(1892)에 영산현감 신관조가 석수 김내경을 시켜 다시 지었다.

  다리 주변에는 '남천석교서병명(南川石橋序幷銘)'이라고 쓴 비석과 '만년교'라고 쓴 비석이 있는데, 두 비석 중 하나는 필력이 신통한 열세살 신동이 쓴 글씨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년교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지닌 무지개다리로, 조선 후기 '홍예교(虹蜺橋 - 무재기다리)'를 세운 방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얼 핏 놓칠뻔한 영산만년교.. 창녕 여행 경로를 짜다가 우연히 지도에서 보게됐다.

너무 이뻐서 만년교 만큼은 꼭 방문하겠다는 의지 활활! ㅋㅋ

 

 

< 연지못 >

산책하기 좋은 곳.. 하지만 나는 산책할 시간은 없고... 식사하러 방문..^^

식당들이 많이 위치해있다. 그 중에서 '둘리식당' 선택.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

 

 

  <창녕영산교리신씨고가 >

 

설명이 없어 좀 아쉽다.. 그리고 관리가 안 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떠나기전 검색해본 블로그에는 열심히 잡풀도 뽑고 계셨기에.. 관리가 잘 되는 줄 알았는데...

뭔가 더 많이 알고 갔었더라면 유익한 장소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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