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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①] 파평윤씨 교육기관-종학당, 명재고택

취미생활~♣/외출 하기

by 달래~♡ 2020. 8. 2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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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 : 2020. 08. 05. (수)

여행지 : 논산

방문지 : 종학당 -파평윤씨의 교육기관 → 명재고택→ 노성 궐리사 → 백일헌 이삼 장군 고택 → 화지중앙시장 → 논산 관촉사 → 논산 선샤인랜드 →  견훤왕릉 → 쌍계사 대웅전 → 돈암서원

 

 

<종학당 - 파평윤씨의 교육기관>

종학당 입구.. 홍살문

푸르른 잔디가 인상적이다. 선비 정신을 충분히 반영한 배롱나무와 소나무도 멋스럽고.. 

 

 

홍살문에서 바라본 모습... 저수지와 푸르른 논이 보인다.

 

종학당 설명

 

  파평 윤씨 가문 출신의 대과 급제자 46명 대다수가 이곳 출신이었다고 하며,

종학당이 생긴 후 280여년에 걸쳐 42명의 문과급제자와 31명의 무과 급제자 등 수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다.
  2008년 10월 2일 구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한민대학교와 윤증 고택의 초청으로 종학당을 방문하고 난 후

운치있고 아름답다고 말했으며, 그 방문기념 표지석이 그때 심은 소나무 앞에 서 있다.

 

 

종학당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위치한 '종학당' 이 곳에서 천자문부터 소학까지 공부한 다음
고급과정인 사서삼경을 배우는 상급과정은 윗쪽에 있는 백록당, 정수루에 올라가 공부했다 한다.

 

 

종학당 뒷 담벼락

비가 추적 추적 계속해서 내린다. 때문에 배롱나무 꽃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이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자 전문 사진가 분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종학당 뒤로 보이는 연못과 정수루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의 사상을 담은 연못

연꽃이 만개하면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우) : 정수루 / 좌) : 백록당
백록당 앞에서..^^

  백록당은 제일 뒷편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로 종학당 출신 가운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골라 고급교육과정을 가르친.. 이른바 개인 교습같은 수준별 교육당이었다.

 

정수루 에서..

정수루는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다. 안에서보니 정말 멋있는 건축물이다.

정수루에서 바라본 모습. 연못과 배롱나무.. 그리고 종학당의 뒷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졌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는 언제들어도 좋다..^^

 

종학당 왼편에 있는 보인당

'보인당'은 유림들이 교육과 연구를 담당했던 곳으로

조선후기 의령현감, 공조정랑, 상의원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였던 동토 윤순거 선생의 뜻을 이어받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같은 파평윤씨로서.. 파평윤씨 종가의 체계적인 교육에 대해 알 수 있어 의미 깊었고.

연못 및 전통 건축물들의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논산 파평 윤씨 노종파 재실과 덕포공재실>

 

재실 뒤쪽으로 잘 가꾸어진 파평윤씨 묘역이 있었다.

 

재실 : 병사(丙舍)라 불리는데 묘소를 지키는 묘막을 병사라 부른다.
병사리의 이름도 이렇게 파평 윤씨 노종파의 묘소를 지키는 병사가 있기 때문에 붙여지게 되었다.

덕포공은 '윤순거'의 아들 윤진의 호 이다.

 

 

<명재고택>

 

고택을 방문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다. 특히나 후손이 살고 있는 경우엔 말이다.

입구에서 바라본 명재고택
배롱나무
명재고택의 유명한 장독들..^^

 

더 많이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실제 거주중 이기에사진3장만 남기고 떠나려는 순간...

또 다시 비가 쏟아지고.. 오도가도 못 하고 있을 때 문화해설사님이 관람객 2분과 함께 등장하셨다.

 

오호~ 완전 운이 좋았다. 해설사님 덕분에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안채 건물도 조금 더 구경할 수 있었다.

명재고택의 아름다움은 각종 언론들을 통해 많이 보도되어 왔음이 각인되었다.

명재고택은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과학적이며, 자연적이고, 배려심이 돋보이는 고택이다.

 

직접 금강산을 다녀온 후에 집 앞에 금강산을 재현해 놓으신거라고..

 


윤증(尹拯, 1629∽1714) 선생이 살아계셨던 1709년에 아들과 제자들이 힘을 합쳐 지은것이지만

선생은 고택에서 4km 떨어진 유봉에 있는 작은 초가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셔서

명재고택의 “고”자를 옛“古”가 아닌 연고“故”자로 쓰고 있다.

 

 

명재고택이지만 노서(魯西) 윤선거(尹善擧)의 큰아들로 노서종택(魯西宗宅, 魯西 - 명재의 아버지인 尹善擧)이기도 하다.명재고택은 조선시대 활용주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는 구조적인 면과 배치 형태, 창호의 처리 등에서 기능성과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곳간채의 통풍과 안채의 일조량까지 계산한 과학적인 건물 배치, 안채에 거주하는 여자들의 독립된 공간 확보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 할 수 있도록 만든 내외벽, 효율적인 공간창출의 지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큰사랑방의 안고지기(미닫이와 여닫이를 동시에 작동)문 등 집안 곳곳에 많은 삶의 지혜가 숨어있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이다.

 

윤증의 모친인 공주이씨는 청태종이 조선을 침략했을때 남편인 윤선거를 따라 강화로 피난했다가

강화가 함락되자 순절하였다 하여 1681년에 이 정력가을 하사하였다 한다..

민속자료 190호인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때 소론의 지도자였던 윤증이 지었다 한다..
인근에 김장생을 기리는 돈암서원이 있는데, 우암 송시열의 스승이 김장생이고
윤증은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하니 대전의 우암사적공원의 송시열 자취와 더불어
돈암서원까지 답사를 한다면 흥미로운 역사의 자취를 돌아 보는 코스가 되겠디..

 

윤증은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나 나중에는 사제지간의 의리를 끊고
결국 송시열의 지지하는 자들은 노론이되고, 윤증을 지지하는 자들은 소론이 된다..

 

문화해설사를 동반한 고택 관람과 관람시간(4월~10월 10시~17시. 11월~3월 10시~16시)을 지킨다면 명재고택의 매력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인답게 관람 에티켓 지켜가며 명재고택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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