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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절 - 흥국사(남양주시 별내면 )

취미생활~♣/외출 하기

by 달래~♡ 2011. 8. 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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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속에 있을 때 부터 다니기 시작한 수락산 자락의 '흥국사'

 

7월 31일 일요일.. 비가 내리긴 하지만, 오랜 시간 절을 찾지 못한지라...

그냥 생각나서 찾아갔는데, 알고보니 음력 초하루였네~^^

 

좀더 많은 사진 찍고 싶었지만. 왠지 머쓱.. ^^;; 그리고 비도 내리고...

 

▲ 대웅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건물로서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의 처마가 넓고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어 전체적으로 단정하고도 경쾌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대웅전은 1818년(순조 18) 큰 화재를 입어 소실되었다가 그 3년 뒤인 1821년에 중건된 것이다.

  공포는 조선 후기의 정식적인 조각수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추녀마루에는 궁전이나 성곽의 문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상이 배열되어 있다.

현재 경기도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에는 목조석가삼존불좌상 및 감로왕도. 지장탱화. 칠성탱화. 현왕탱화. 신중탱화가 있다.

또 대웅전보전 뒤쪽에는 편액이 여럿 있는데, 흥국사법당단청기문(1824년). 대웅전중수급채화기(1888년). 대웅전단청기(1976년).

개금불사기(1977년) 등이 그것이다.

 

  흥국사는 왕실의 원찰로써 발전했기 때문에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성보문화재가 많은 편이다.

  우선 지금도 남아 있는 각 전각을 연결하는 돌계단을 보더라도 단정하게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건실한 축조수법으로 쌓아

이곳을 밟는 사람들이 한눈에 다른 곳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느낄 정도다.

또 서울의 다른 절에서 속말하기를, "덕절 중은 볼 때면서 불 막대기로 시왕초를 그리고, 회계 중은 불때면서 초갈향을 한다."고

할만큼 불화들이 많다.   지금 건물로는 대웅보전. 만월보전. 영산전. 독성전. 시왕전. 단하각. 범종각. 응향각. 반산암. 큰방 등이 있고,

각 전각 안에는 불보살상과 불화들이 빠짐없이 봉안되어 있다.

그밖에도 삼층석탑과 흥국사기적비.덕흥대원군신도비 및 부도 2기와 신도공덕비 등이 있다.

또 각 전각에는 유서 있는 주련과 편액도 여럿 있다.

 

▲ 완전해체보수 한단다...

 

 

 

▲ 영산전

   대웅보전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웅보전보다는 작은 건물이지만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옆면 2칸의 비교적 짜임새 있는 건물이다.

건축 양식은 대웅보전과 같이 다포계 건물인데, 각 기둥 위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천정은 '정'자형이 반복된 이른바 우물천정이며, 주악비천도가 그려져 있다. 

  안에는 석가삼존불좌상과 16나한상 및 영산회상도. 신중탱화. 나한도 4폭이 있다.

이 가운데 16나한상이 비교적 오랜 것이고 불화들은 전부 1892년(고종 29)에 봉안되었다.

또 영산전 뒤쪽에는 1976년 단청한 것을 기념한 편액이 있고, 바깥쪽 기둥에는 흥선대원군의 필치로 된 주련이 걸려 있다.

 


▲ 시왕전


  대웅전 오른쪽에 있으며 정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였고, 공포는 주심포이다. 1821년 중건 때의 건물로 추측된다.

안에는 지장삼존을 비롯해 시왕상. 인왕상. 판관. 녹사 등의 상과 불화로는 지장탱화. 시왕도 10폭이 있다.

또 그밖에 1870년(고종 7)의 시왕전 중수기. 명부전중수시주질 등의 현판과 가마. 위패. 업경대. 연도 있다.

 

만월보전


  만월보전은 시왕전 뒤쪽에 석축을 쌓아 한 단 높인 대지 위에 지어진 건물로서, 6각형의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1818년의 큰 화재 때 양로실과 함께 화재를 면했으므로 늦어도 1793년(정조 17)또는 그 이전의 건물로 볼 수 있다.

6각형의 각 변 길이가 2.3m에 지나지 않는 작은 건물이지만 사찰 건물로서는 유례가 드문 6각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불단에는 1861년(철종 12)에 해당되는 연호와 시주 명단이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그밖에 왕실 시주자 명단이 적힌 <위축현판문>과 일반 시주질의 현판이 걸려있다.

안에는 약사불좌상과 불화로서 약사후불탱화 및 팔상도 8폭이 있다.

<약사여래 부처에 얽힌 일화>

  지금으로부터 약70-80년전의 일이라 한다.

  서울 정릉골에는 봉국사가 있는데 이절의 원래 이름이 약사절로 지금도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이 절에서 약사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하기만 하면 온갖 병이 다 났고, 소원이 성취 되므로 많은 신도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

법당의 기도를 맡은 스님들은 1년내내 잠시도 쉴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중 어느해 정월달 법당 시중에 지친 스님들이 모여 앉아 하는 말이

"약사부처님 때문에 우리가 고생이다."라며 입을 모아 무엄한 말이긴 하지만 피곤한 끝에 원망스러운 투정 아닌 투정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법당에 가보니 약사부처님이 안계신 것이었다.

모든 스님들이 밖으로 나와 사방을 찾아 보아도 약사부처님을 찾지 못하였다.


  결국, 한식경의 시간이 지난후에야 동구밖 개천가에 앉아계신 부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중이 반가와 하고 참회 하면서 옮겨 모시기로 했지만 부처님이 꼼짝 달싹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석불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짓이 아님을 알고 대중들이 참회하면서 부처님께 여쭙기를

  "이곳이 마땅하지 않으면 어느절로 가시겠습니까?"

  "홍천사 입니까?"

  "정토사 입니까?"

  "명도절(개운사)입니까?"라며 서울 주변의 절 이름을 모두 들먹이면서 좌대를 움직이려 하였으나 꼼짝하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대중들이 또다시 절 이름을 대다가 "흥국사로 가시렵니까?" 하였을때 드디어 부처님의 좌대가 쉽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결국 봉국사의 스님들 중 스님도인이 부처님을 모시고 단숨에 흥국사까지 모실수가 있었다 하며, 법당의 자리도 확정하지 못하고

모셔다가 내키는 대로 놓았던 자리에서 또 다시 자리를 옮기려하니 부처님이 요지부동 꿈쩍도 하지 않으셨단다.

할수 없이 그곳이 부처님이 좌정할 곳임을 알게되어 그 자리에 오늘의 흥국사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 된 것이라 한다.


  이곳을 찾는 많은 신도들이 대웅전 부처님에게 기도하고는 틀림없이 약사여래 부처님에게 기도하고 공양을 올린다.

그만큼 이곳 흥국사에 있는 약사여래 부처님의 영험한 내력이 일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약사부처님에 대한 약사 신앙은 중생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 한다.

 

 

▲ 산신각

 

▲ 종각

 

내가 이렇게 엄청난 절에 다니고 있었구나^^

자료출처 : http://jongchen.buddhi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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